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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철학]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책과의 대화

by 별을 보는 사람 2024. 9.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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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스토아 철학’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흔히 금욕주의나 감정 억제라는 편견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스토아 철학은 훨씬 더 실용적이고 인간적인 철학입니다.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의 저자 마시모 피글리우치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이 어떻게 현대인에게도 유용한 가르침을 제공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평정과 지혜,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찾는 방법을 제시하며,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통찰을 줍니다.

 

 

책 속의 구절들

대조적으로 스토아주의에서 나는 이성적이고 과학 친화적인 철학을 발견했다. 이 철학은 영적인 차원을 갖춘 형이상학을 포함하고 있으며, 수정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열려 있고, 가장 중요한 점은 대단히 실천적이라는 것이다. 스토아주의자들은 보편적 인과성이라는 과학적 원리를 수용했다. 즉 모든 일에 원인이 있고, 세상만사가 자연의 절차들에 따라 전개된다는 것이다. 도깨비 같은 초월적 요소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우주가 이른바 로고스(Logos)의 명령에 따라 짜여 있다고도 믿었다. 여기서 로고스는 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또는 그냥 '아인슈타인의 신'이라 부르곤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스토아주의는 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명명백백한 단순한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다.
스토아 체계의 다른 구성 요소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스토아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단연코 그 실용성에 있다. 스토아주의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모양새로 발전했다.

 

 

 

 

 

 

 

에픽테토스의 예시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바처럼, 이른바 스토아적인 통제의 이분법, 즉 어떤 일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어떤 일들은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은 실제로 우리가 세계에 미치는 세 차원의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특정 선택을 한다. 즉 어떤 목표(바다 항해)와 그것을 성취하는 최선의 수단(숙련된 선원들)으로 보이는 것을 선정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단지 내가 어떤 선택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곧 내가 어떤 특정 행동 방침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쓸만한 키잡이가 그날따라 아플 수도 있고, 혹은 그를 부리기에는 몸값이 너무 비쌀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요인은 전적으로 우리의 통제 범위 바깥에 있어서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란 엄두조차 낼 수가 없다.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가 그런 것들이다.

 

 

그렇다, 확신은 내가 나의 능력에 속한 일은 무엇이든 다 했음을 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것, 오로지 그것만이 자신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누군가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다. 우주는 다만 하던 대로 할 뿐이다. 상사, 동료 직원, 회사 주주들, 고객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요인들이 다 그 우주의 일부다. 자, 그러면 어째서 그들이 나의 분부대로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단 말인가?

 

 

에픽테토스의 스승인 무소니우스 루푸스는 특히 실천적인 스토아주의자로 유명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삶의 중요한 사안들에서부터(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발상 같은) 집에 어떤 물건들을 들일 것이며(실용적이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 소재로 만든) 머리를 어떻게 자를 것인지(쓸모없는 술만 잘라 내는) 같은 다소 사소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관해 조언을 했다. 그는 식단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그는 "비록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도록 부추기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많은 쾌락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음식과 연결된 쾌락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모든 쾌락 중에서도 가장 맞서 싸우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말을 보탠다. "그런 몇 차례 식도락의 순간들을 얻기 위해서는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무수히 많은 값비싼 음식을 가져다 차려내야 한다. 요리사들은 농부들보다 아주 높은 몸값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잔치상을 차리는 데 자기 전 재산을 탕진하지만, 그런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 음식에 관한 한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얻기 어려운 음식보다 얻기 쉬운 음식을, 곤경을 수반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을,, 가용하지 않은 것들보단 가용한 것을 더 선호한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좌우할 수 있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다만 우리 자신의 행동만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킬린이 "견디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도 주목하라. 이것은 사실상 에픽테토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외로움과 홀로 있음의 한 가지 차이가 스토아주의자들에게는 더없이 분명했을 것이다. 후자는 사실적인 서술인 반면에 전자는 우리가 그러한 서술에 부과한 판단이다. 그리고 우리가 퇴짜 맞았다고 느끼고 무기력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순전히 그런 사실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사실에 대한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에픽테토스의 말 속에 일견 다소 근엄하게 들릴 수도 있는 긍정적인 교훈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내의 또 다른 일면은 탄력이며, 탄력은 곧 힘을 되찾는 일이다. 살아가는 동안 이따금 우리를 외롭게 몰아가곤 하는 외부 환경들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는 거의 혹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의료적인 도움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병리학적인 상태들을 제외하면) 고독을 외로움으로 전라기키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고 우리 자신의 태도다. 우리는 혼자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무력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은 매일 감사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루를 끝내고 휴식을 위해 발걸음을 내딜 때, 자신의 정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섹스티우스의 관례였다. "너의 나쁜 습관들 중에 오늘 치유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악행을 막아냈는가? 너는 어떤 측면에서 더 나아졌는가?" 만약 자신이 매일 법정에 출석해야 하리란 것을 안다면 분노는 그치고 더 온화해질 것이다. 그날 벌어진 일들 전체를 이런 식으로 검토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훌륭한 일일 수 있겠는가? 스스로 이렇게 검사를 마친 후에 찾아오는 잠이라면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우리의 정신이 칭찬이나 질책을 받고 났을 때, 우리의 비밀 심사관과 검열관이 우리의 품행을 보고하고 났을 때, 그 잠은 얼마나 평온하고 건전하고 속이 편하던가? 나는 내 이런 특권을 이용해 매일 내 자신 앞에서 나의 대의를 변론한다. 등잔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내 버릇을 아는 아내가 말을 멈출 때, 나는 그날 하루 전체를 내 앞에 펼쳐 놓고 차례차례 생각하며 내가 한 말이나 행동 전부를 반복해본다. 나는 내 자신에게 어떤 것도 감추지 않으며, 어떤 것도 생략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있는데 어째서 내가 내 결점을 그게 무엇이든 두려워해야 한단 말인가? "이번엔 너를 용서하노라. 그러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 선한 사람은 조언을 들으며 기뻐한다. 최악의 인간들은 누군가의 인도를 받는 것을 절대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마치며

이 책을 읽으며 스토아 철학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토아주의는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이성적으로 다루는 철학입니다. 특히,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는 가르침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매우 실용적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불필요한 걱정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는 제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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