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감정이죠. 자아, 직장, 사랑, 가족,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까지. 어디에서도 불안이 빠질 수는 없어요. 불안을 보살피는 일은 곧 나의 삶을 보살피는 일과 같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갑니다. 장자의 [어부편]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는 것처럼 불안에서 도망가려 할수록, 더 바짝 따라붙는 법이죠.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불안의 형태를 다룹니다. 직장에서, 연애에서, 그리고 가족 관계에서까지요. 어쩌면 내가 결정장애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완벽주의 때문일지도 모르고, 매일 나를 괴롭히는 상사는 알고 보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평화로운 글로 많은 독자들을 위로해 온 저자는 일상 속 불안의 비밀을 따뜻하게 풀어내며, 우리의 불안을 조금씩 보살피고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 명씩 살고 있는 이 아이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한다.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들은 이 존재를 '내면아이', '내면 안의 아이(child within)', '신성한 아이(the divine child)'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설명한다. 내면아이는 한 개인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 불안, 겁, 자기의심으로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것은 내면아이가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불안과 우울 같은 정서적인 문제의 많은 부분이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내면아이를 숨기면 숨길수록 타인과 상처를 자주 주고받거나 고통스러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서너 살짜리 아이가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면 떼쓰거나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내면아이에 관한 개념은 가족, 커플, 부부관계 문제와 함께 연구된다. 부부치료 전문가 오제은 교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과 부부갈등의 원인을 내면아이가 지닌 어린 시절의 상처와 관련지었다. 오 교수는 내면아이가 지닌 결핍과 상처를 애인이나 배우자로부터 채우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기대에 집중한다. 일련의 대화법과 훈련을 통해 서로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바라보게 하고, 부정적인 기억들이 배우자 선택과 부부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깨닫게 한다.
국내의 한 정신의학자는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결정이 옳았는지 타인의 확신에 매달릴수록, 결정에 대한 만족도는 점점 떨어진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직관을 믿으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결정이 어려운 이들은 항상 완벽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니까 결정장애를 자처하는 이들은 우유부단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완벽주의자형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완벽한 결정을 원하는 것이다. 이 동기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완벽주의자들은 여러 문제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정답은 없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마음껏 발휘하여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그 이후가 무척 중요해진다. 최선을 다해 그 길을 정답으로 일궈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어느 날 돌아보았을 때 그때 그 선택을 참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을 넘어, 무엇을 택했건 그 이후의 자신의 태도와 노력에 스스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완벽한 결정은 없다. 단지 최선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믿어주고 거기에 온 힘을 쏟아 최고의 결정으로 만드는 일은 자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정서 명명하기'라고도 하는 감정 라벨링(affect labeling)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내가 '불안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언어화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성적인 활동이다. 이름을 붙이면 감정은 본능의 영역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이때 뇌 속에서는 사령관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과 부정적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통로가 회복된다. 전전두엽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면서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굳이 언어화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자신의 정서를 인식하는 일은 마음을 다루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있으면 그 감정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마치 미로 속에 있으면 내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멀리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어디쯤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격한 슬픔 속에 있을 때는 감정과 내가 분리되지 않고 '슬픔=나'의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틈이 없다. 감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면 객관적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이처럼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을 '메타무드(meta-mood)'라고 한다.
흔히 마음을 바다에 비유하곤 한다. 겉으로 보면 파도가 심하게 칠 때도 있고 잔물결이 일 때도 있지만, 높은 파도가 칠 때조차도 바다 깊은 곳은 아주 고요하다. 고요한 마음이 바로 마음의 기본 상태이다. 우리가 그 본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차드 멩 탄은 평온하고 청명한 마음을 되찾으면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마음의 기본 상태를 행복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단지 마음의 고요함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명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될뿐더러 종교색이 느껴져 거리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오랜 시간 수행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적용해볼 수 있다. 그저 마음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음의 표면은 변화무쌍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표면이고 흘러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감정 또한 잠깐 머물렀다 지나가버린다. 우리의 감정, 기분, 생각, 경험들을 모두 흘러가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불안을 마주하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주위 사람들은 내가 많은 책을 읽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나는 그리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다. 빨리 읽어내는 능력도 없다. 다만 한 권의 책을 오래오래 품고 있는 편이다. 반복해서 읽다 줄을 긋고, 뭔가를 끄적거리고, 온종일 고민하고, 버스 창밖을 보면서도 읽었던 책을 생각한다. 그뿐일까. 다 읽은 책을 친구에게 추천하며 또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를 감동시킨 책의 문구를 포스트잇에 써보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 책이 삶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무언가가 삶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나의 슬픔과 기쁨, 불안과 허무에까지 스며들어 영향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들러는 그의 대표적 이론인 '개인(individual) 심리학'에서 열등감을 핵심 개념으로 다루었다. 그에 의하면 한 사람의 삶의 목표는 어린 시절 외부세계로부터 받은 인상에 의해 형성된 세계상과, 이러한 세계상을 바탕으로 삶에 대해 취하게 되는 특정한 입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과정에서 성격이 형성되는데 만약 결핍이 있었거나 응석받이로 길러지면 열등의식이 생겨나고 그것은 삶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계속해서 우월감을 추구한다. 타인에 대해 비교우위를 점하는 것이 인생의 중대한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하게 된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나를 공격하는 타인과 별개로 나 스스로의 잘못된 믿음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한 나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말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나의 몫이다. 사람들의 모든 반응이 나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는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기준은 수많은 변수가 있는 데다 매우 다양하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나의 능력치를 넘어서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도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겠다.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는 건 실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결점, 시기심,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불편감은 차츰 평온함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가족에 관한 아픈 진실은 누구나 직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충돌이나 냉전은 그 어떤 관계보다 서로를 힘들게 한다. 다이슨의 말대로 깨진 유리공은 복원되기가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관념보다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은 없는지, 때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마냥 따뜻할 수만은 없고 자신이 바로 상처를 주는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생각과 태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절대 서로에게 완벽해질 수 없는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는 가족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비극이 될 정도로 지나치게 기대하고, 또 그 기대에 맞추려고 무리하면서까지 애쓰는 걸까. 왜 그레고르는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아버지의 빚과 여동생의 학비가 모두 제 몫이라고 받아들였을까. 과도한 기대를 받아들이면서까지 무거운 짐을 지려 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가족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자신의 자녀나 형제, 때로는 부모를 자기 자신처럼 여기는 것이다. 물론 가족을 다른 관계보다 심리적으로 더 가깝게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항상 문제는 '지나친 것'에서 발생한다. 타인과 지나치게 유착된 상태는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희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가족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복합적인 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탓이다. 회사는 그만두면 그뿐이고, 충돌이 많은 친구와 애인도 안 보면 그뿐이지만 가족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험프리스 또한 행복한 가족 관계를 위한 조건으로 자신의 욕구를 아는 것을 꼽으며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족의 1차적 기능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개개인의 잠재적인 소질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따뜻한 감동을 만들어내려다가 현실을 무시해 버리는 가족드라마보다는 지혜로운 시선으로 자아와 가족의 균형을 맞추어나가는 '인생극장'이 필요하다. 그 균형을 유지하는 지혜가 발휘될 때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 때문에 상처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개체화가 그렇듯이 세 번째 개체화도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체화(individuation)는 원래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라는 용어로 사용되었지만, 완전한 분리가 아닌 연결과 분리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일부 연구자들이 '개체화'라는 용어로 변경했다. 즉, 단절이 아니라 부모와의 지지적이고 밀접한 관계 속에서 개체감을 확립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부모님에게서 완전히 떨어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이지만 양쪽 모두에게 성숙의 발판이 되는 과정이다. 그것이 우선시될 때 비로소 배우자와 건강한 관계도 맺을 수 있다. 나아가 자녀였던 우리가 부모가 될 만큼 충분히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과정이기에 그 안에서 느낀 불안은 이유 있는 성장통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불안은 우리가 감춰야 할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을 마주하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나는 성장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불안을 통해 나를 더 잘 이해하고, 그 속에서 평온을 찾는 방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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