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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내가 뭘 읽은 거지 5

책과의 대화

by 별을 보는 사람 2020. 6.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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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위로형 자기계발서

성과사회에는 불안, 두려움, 근심, 걱정이 항상 있어야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안 된다. 김이 빠질 정도의 아주 작은 추구가 필요하다. 그 아주 작은 출구 중 하나가 바로 위로다. 위로는 외로움과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한다.

상품화된 위로의 최선봉에 있는 것은 위로형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 강사들도 예전처럼 성과를 내세우며 다그치는 강사들보다 사람들과 공감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강사들의 인기가 높다. 한때 유행했던 더 노력해야 한다고, 치열하게 살고 있기는 하냐고 다그치는 독한 말들보다 괜찮다고, 지금 그만큼으로도 멋지고 훌륭하다고 위로하는 말들이 더 많이 팔리는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고, 힘든 일이 많았다고, 수고했다고 위로를 해도 나를 가두고 있는 틀은 바뀌지 않는다.

위로형 자기계발서는 오히려 틀을 더 튼튼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짜증과 불안, 아픔과 슬픔이 지속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분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분노의 감정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다시 욕망과 불안의 감정으로 나를 되돌려 놓는다.

우리는 책과 TV 프로그램, 그리고 각종 강연과 노래를 통해서 잠시 위로를 받고, 치열한 경쟁을 위한 힘을 얻어서 다시 성과주체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 또 다시 소진의 길을 향해 자발적 착취를 시작한다. 위로는 성과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p278

 

잠자리에 들어 협탁 등을 켜고 그 밑에서 위로를 해주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또 상처 받고 지치고 협탁 등 밑에서 마음의 진정제를 맞는다.

 

위로형 자기계발서는 다음과 같다.

걱정 말아요, 그대, 슈퍼스타, 길, 달리기, 나를 외치다. 힘을 내요, 그대, 힘 내, 청춘 고백,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밤, 나를 외치다 등등. 하지만 이런 마음의 진정제는 약발이 너무 약해 하루가 지나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책을 집어 들고 또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진정제를 계속 눈으로 섭취하다 보면 내성이 생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표출해야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진정제를 찾아 나선다. 현실이다. 어찌 이런 류의 위로형 자기계발서는 종교, 심리학을 아우르는 참 소재도 많다.

 

 

 

우리에겐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우리가 가진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불안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과 의문이 소비자의 권리에나 매달려 사는 우리들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우리는 헌법이 정해 놓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성별, 피부색, 종교, 직업, 장애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 종교를 믿을 권리, 살고 싶은 곳에 살 권리,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 원하는 직업을 가질 권리와 같은 자유권, 일할 기회를 요구할 권리,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 등의 사회권, 국가에게 어떤 행위를 해달라고 하는 청구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 모든 주권국가의 국민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 권리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잘 모르고 있다. 우리가 아는 권리는 소비자주권일 뿐이다.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은 풍요로운 소비자로서의 삶일 뿐일까? 감정 마저도 소비하는 그런 삶일 뿐일까? 이런 고민과 의문은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곳을 제대로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우리들의 감정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p281

 

나는 살면서 어떤 것을 욕망하고 어떤 것에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불안을 느끼나? 물론 경제적인 풍요를 욕망한다. 그리고 경제적인 풍요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걱정과 불안을 느낀다. 이렇게 살다가 나이만 먹고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솔직히 경제적인 풍요에 대한 욕망을 그저 도로에 달리는 멋진 외제차들을 보고 상대적인 빈곤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빼고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저들은 어떻게 돈을 벌어 저런 차를 몰고 다닐까? 모두들 경제적으로 앞으로 나가는데 나만 제자리걸음 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소에 내가 느끼는 의문이다. 그리고 가끔 위안도 받는다. 조금 변두리의 빌라에 주차되어 있는 외제차들을 보면서 집도 없으면서 외제차 타고 다니는구나 하고 말이다.

성별, 피부색, 종교, 직업, 장애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종교를 믿을 권리

일할 기회를 요구할 권리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

위의 권리에 대해 평소에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만약 이렇게 경제적 풍요와 상대적 빈곤만을 생각하며 살다 보면 잠깐의 행복과 길고 긴 불안, 걱정의 느낌을 느끼며 삶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 벌써 100세 시대를 살면서 앞으로 나이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고 있지 않나?

 

 

 

웰빙이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상품 구매에 머물렀던 것처럼 힐링도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웰빙이 좀 더 비싼 상품의 수식어가 된 것처럼, 힐링은 잠시의 편안한 도피처가 되고 있을 뿐이다. 위로형 자기계발서는 아픔의 원인을 치료하지 못하고 단지 진통제를 통해서 아픔을 잠시 잊게 해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치유는 아픔과 고통의 원인을 조금식이라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아픔과 고통의 원인인 불공정한 사회체제를 조금식이라도 바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바꿔주는 것은 치유가 될 수 없다. 공감과 연대를 바탕으로 우리 스스로가 함께 바꾸는 과정 자체가 진정한 치유가 아닐까?

-p289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아픔과 고통의 원인인 불공정한 사회체제를 조금식이라도 바꾸는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고, 자식들은 시작점에서부터 평등하게 공부할 수 있고,

100세 시대에도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런 나라들이 지금 지구 상에 존재하나? 만약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먹고사는 문제에 빠져 정말로 이런 문제를 만들어 내는 사회 시스템을 바꿀 방법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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