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꺈 것도 잠든 것도 아닌 경계에 앉아 소마는 꿈을 꾸었다. 꿈은 다섯 날 동안 이어졌다. 첫날에 그는 다섯 감각의 잔재들이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그룻에 남은 음식물을 비워내는 것처럼 신체와 정신을 이어주던 미세한 통로들에 남은 찌꺼기는 깨끗하게 비워졌다.
둘째 날에 그는 기억과 이름이 사라지는 꿈을 꾸웠다. 다섯 감각으로 쌓아 올린 소마라는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보았던 것들과 들었던 것들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냄새 맡았던 것들과 말했던 것들과 느꼈던 모든 것들이 녹아 없어졌다.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뒤집어씌었던 수많은 지위와 관계와 이름이 증발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더 이상 소마라고 부를 수 없는, 소마 안에 앉아서 이 꿈을 꾸는 자뿐이었다.
셋째 날에 그는 의지가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무엇인가에 닿고자 하고 이루고자 하고 요동치고자 하는, 부풀 대로 부풀었던 그 충동과 욕망 자체가 점차 오그라들더니 결국 말라 죽어버렸다. 더는 하고자 하는 것도 하지 않고자 하는 것도, 생성하려 하는 것도 소멸하려 하는 것도 남지 않았다.
넷째 날에 그는 자기의 의식을 보았다. 내면의 주인, 내면 안에 앉은 자, 내면 그 자체와 대면했다.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원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세상의 구심점이고 세상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는 그 상태 자체였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앏은 경계로 구획되어 있는 무엇, 그것이 자기의 의식이고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마지막 다섯째 날에 경계는 사라졌다. 거품이 터지듯 자아의 경계는 사라지고 그것은 돋 세계 자체가 되었다. 이제 자아는 없고, 자아 아닌 것도 없었다. 안도 없고 밖도 없으며, 존재도 아니고 부재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일자이면서 최초의 시작이고 동시에 다자이면서 최후의 끝이었다. 극단은 구부러져 맞닿고, 그 맞닿은 면에 경계는 드러나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그 초월 속에서 그것은 머물렀고 쉬었으며 침묵했다.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ㅌ다. 올돋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누구나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되지. 그러니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를 담대하게 하고, 너를 어른으로 만든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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