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의식 단계에서 마음속으로 ‘멘털 모델 mental model’을 형성한다.
“요컨대 OO이라는 뜻이죠?”라고 정리하는 것은 상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가진 멘털 모델에 맞춰 이해하는 듣기 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만 듣는다면 자신을 바꿀 기회를 잡을 수 없다. -p268
만약 “결국 OO이라는 뜻이죠?”라고 요약하고 싶어질 때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과 발견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쉽게 아는 것은 과거의 지각 틀을 그대로 늘려 가는 효과밖에 가져다줄 수 없다. 정말로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려면 안이하게 ‘알았다’고 생각하는 습성을 경계해야 한다. -p270
우리는 때때로 이데아에 사로잡혀 현실을 경시한다. 그 전형적인 예가 수많은 기업에서 실시하고 있는 인사 제도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에서 목표관리 제도를 인사 제도로 채택하고 있지만, 내가 관찰해 온 바로는 실제로 본래 설계한 대로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 인사 제도는 이데아의 오류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인사부도 인사 컨설턴트도 ‘인사의 이데아’를 염두에 두고 제도를 설계하지만 현실적인 운영 상황은 플라톤이 지적한 대로 ‘이데아의 열화 복제로서의 현실’ 일뿐이다.
-p274
베이컨은 인간성 자체를 근거로 인간이라는 종족이 갖고 있는 우상을 ‘종족의 우상’으로 지칭했다. 즉 ‘착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거나 단것을 먹은 뒤 귤을 먹으면 시게 느껴지는 것이 전형적인 종족의 우상이다.
베이컨은 각 개인의 고유하고 특수한 본성이나 자신이 받은 교육과 타인과 교류에 의해서 생기는 우상을 ‘동굴의 우상’이라고 명명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독선’이다. 자신이 받은 교육과 경험이라는 편협한 범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단정해 버리는 오류다. 이를테면 외국인 동료와 ‘어쩌다’ 갈등을 경험한 사람이 ‘원래’ 외국인은 까탈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동굴의 우상이다.
베이컨은 인류 상호의 접촉과 교체에서 비롯된 우상을 ‘시장의 우상’이라고 정의했다. 언어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해 생기는 우상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며, 쉽게 말하면 ‘거짓말’이나 ‘전해 들은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현혹되는 것이다. 종종 인터넷 게시판 사이트에서 읽은 이야기를 정확한 소식인 양 남에게 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러한 사람이 걸려들기 쉬운 것이 시장의 우상이다. 시장이라고 한 이유는, 시장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갖가지 거짓말이 난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베이컨은 철학의 다양한 학설이나 잘못 증명된 법칙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온 우상을 ‘극장의 우상’이라고 일컬었다. 저명한 철학자의 주장 등 권위와 전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믿는 데서 생겨난 ‘편견’을 뜻한다.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평론가의 주장을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이러한 사람은 전형적으로 극장의 우상에 현혹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틀림없이 ‘미디어의 우상’에 휩싸여 있다.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에 의해 진리가 둘이 된 것이 문제였다. 서로 자신이 진리라고 내세우며 추잡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만 해 보아도 그 어리석음이 어땠을지 짐작 가능하다. 중세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특히 지식인 계층의 사람들은 ‘이것은 어느 쪽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 즉 기독교가 표명하는 진리에 대한 의구심이 마침내 터져 나올 듯한 티핑 포인트 tipping point에 데카르트는 ‘이런 때야말로 전부 없었던 일로 하고 확실한 데서부터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는 생각으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외침을 꺼냈던 것이다. -p282
우리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데카르트가 제시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결국 차세대로 이어지는 철학자 사고의 출발점으로 채택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확실하다. -p285
우리는 공적인 입장이든 사적인 입장이든 항상 트레이드오프 trade off (한쪽을 추구하면 다른 한쪽을 희생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관계-옮긴이) 상태로 양자택일을 종용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 선택 사항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말 그럴까? 헤겔이 지적한 대로 지적인 투쟁이나 대화를 통해 양자를 양립시키려는 태도가 부정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트레이드오프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양쪽 다 원한다든가 어느 쪽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혁신가가 그런 상황에서도 불가능한 일을 무리하게 추구한 끝에 트레이드오프를 양립시키는 기술 혁신을 성취했다는 사실 또한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p289
소쉬르는 개념을 정리하는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일본어에서는 나비와 나방이라는 개념을 별개로 구분해 달리 사용하고 있는데, 만약 나비에 해당하는 말이 빠삐용이고 나방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을 뿐이라면, 프랑스인도 마찬가지로 나비와 나방을 다른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명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프랑스인에게는 나비라는 개념도 나방이라는 개념도 없고, 오직 두 가지를 같은 집합으로 인식하는 빠삐용이라는 전혀 다른 개념만 있다. 반대로 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프랑스어인 빠삐용에 대응하는 개념이 일본어에 없는 것이다.
-p294
앞서 일본어와 프랑스어, 또는 영어를 비교했는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 가운데서 더 많은 시니피앙을 지닌 사람과 더 적은 시니피앙을 지닌 사람을 비교해 보면 어떻까? 소쉬르가 지적했 듯 어떤 개념의 특성이 ‘다른 개념이 아니다’를 의미한다면, 더 많은 시니피앙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세계를 더욱 세심하게 분별해 파악할 수 있다. 즉 세계를 더욱 깊이 분석할 수 있다. -p298
핵심은 두 가지다. 우리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틀에 의해서만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한층 더 정밀하게, 미세한 메스실린더를 이용해 계량하듯 세상의 현상과 이치를 파악하려 한다면, 언어의 한계를 인지하고 더 많은 언어, 즉 시니피앙을 조합함으로써 정밀하게 시니피에를 그려 내려 노력해야 한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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